2019.09.No.7

오리 전택부 선생님 선집

오리 전택부 선생 선집 8권 출간 안내

전택부 선집 -8권
2019. 3. 20 / 홍성사


YMCA, 잿더미에서 어떻게 일어섰나?

청년들의 구심점이었던 YMCA, 침체와 폐허에서 ‘푸르름’을 되찾기까지
구한말인 20세기 서두, 이 땅에 ‘청년’이란 말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결성된 YMCA는 젊은이들을 모으고 그들의 역량을 결집하여 나라의 주역으로 자리매김되게 했으며, 우리 민족이 암울한 현실의 질곡을 헤쳐 나가는 데 지렛대와 등불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기를 지나며 YMCA는 침체 상태에 빠졌고, 6 · ­25 때는 공산군의 폭격으로 종로의 서울 YMCA 건물이 불타고 말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날 무렵, 40대에 접어든 저자 전택부 선생은 YMCA에 몸담으며 YMCA의 재건을 위해 불철주야 매달렸다. 건물은 물론 사람과 조직 그리고 무엇보다 YMCA의 정신과 역할을 되살리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성과, 후회와 보람, 절망과 희망, 땀과 눈물과 기도의 흔적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1950년대 말~1960년대 말에 이르는 10여 년 세월, 당시 사회상의 단면들을 엿볼 수 있으며, 저자가 걸어온 길―사잇길, 다릿길, 새 길, 바닷길 등으로 스스로 불렀던―을 인도하신 예수님의 명령과 그 명령에 순종하며 말씀 따라 살고자 한 일상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교회와 사회의 다리, 그 디딤돌이 되려던 영원한 ‘Y맨’의 고백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다. 1부에는 신문에 발표된 각계 인사들의 논설과 저자의 사설 등을 실었다.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던 당시, 재건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디며 돈(건축비)과 사람을 모이게 하면서 밑그림을 그려 가던 저자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2부에 소개되는 저자의 수상(隨想)은, YMCA가 오늘의 모습을 갖춰가기까지 어떻게 그 토대를 다져 갔는지를 엿보게 한다. 무엇보다 YMCA의 근본정신을 살리며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교회와 사회를 잇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던 저자의 간절한 고백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1~2부에는 많은 현장 사진과 저자의 일상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소개되는데, 이 책에 실린 100여 장의 사진은 청년기를 넘어선 YMCA의 중요한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3부에는 YMCA의 이념 연구를 중심으로 발표된 소논문과 논설 등을 실었다. 초창기 YMCA의 역사를 중심으로 이 땅에서 청년운동의 이모저모를 돌아보며, ‘Y맨’의 정체성과 소임 등을 다시 짚어보고자 했다.


<편집자가 뽑은 문장>

내가 걸어온 인생길은 첫째로 ‘사잇길’이라고 느껴졌다. 둘 사이에 꼭 끼어 있는 좁은 길, 따분한 길, 틈바구니 길이었다. 이 길을 나는 ‘예스’와 ‘노’의 사잇길이라고 부른다. ‘예스’ 하면서 동 시에 ‘노’도 해야 하는 까다로운 인생길이다. 철인들은 이 길을 패러독시컬한 길이라고 하지만 이 길을 걷는 인생은 마냥 골탕을 먹기 마련이다. 양극에서 잡아당기는 통에 몸이 찢긴다.
다음 내가 걷는 인생길은 ‘다릿길’이라고 느꼈다. Y는 교회와 사회 사이에 걸려 있는 다리라고 하지만 나는 곧 다리다.
나는 진정 다리 구실을 했던가? 홍파(洪波)가 들이닥쳐도 무너지지 않는 그런 튼튼한 다리…… 인파가 막 넘나들어도 꾹 참고 견디는 그런 무언의 다리…… 허나 때가 오면 자기 허리를 꺾어서 대적이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그런 순국의 다리…… 나는 바로 이런 ‘다릿길’이 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_33.‘내가 걷는 길’에서              


그러면 우리 청년회는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이를 위해 우리 청년회는 신학교가 아니지만 성경도 연구해야겠으며, 체육 단체가 아니지만 육체의 힘도 길러야겠으며, 학교가 아니지만 교육도 해야겠으며, 정치단체가 아니지만 민주주의운동과 단체활 동도 해야겠으며, 가정이 아니지만 ‘가정 밖의 가정’으로서 무가 정성(無家庭性)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도 해야겠으며, 호텔업자가 아니지만 따뜻한 분위기의 침식처도 마련하여 손님을 잘 대접해야겠으며, 산업기관이 아니지만 이 나라에서 가난을 없애고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운동도 전개시켜야 할 것이 며, 외교단체는 아니지만 국제적인 친교와 평화를 위하여 세계적 인 조직망을 통해 폭넓은 외교활동도 해야 할 것입니다.     _38.‘나의 총무 취임 인사말’에서


나는 이 집성체 즉 Y회관을 곧 사람이라고 본다. Y회관에는 입도 있고 코도 있다. 즉 이목구비와 오장육부를 갖추고 있다. 산 인간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도 있다. 전신에 혈관도 배관되어 있어서 피도 통하고 배설도 한다. 열을 당해 주는 기관 도 있어서 언제나 온 몸에 온기가 유지된다. … Y회관은 곧 사람이다. 그래서 이 사람을 잘 먹이고 잘 입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쉬 죽는다. 깨끗하게 거두어 주고 알맞게 사용하지 않으면 쉬 늙는다. 그래서 건물 관리가 필요하고 이 방면의 전문 간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건물 유지 및 관리에는 철학이 필요하고 Y 간사에게는 신앙이 요구된다.          _43.‘Y회관은 곧 사람이다’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가운데 “나는 곧 길이요”라고 하는 대신 “나는 곧 다리요”라고 한 자가 있다. 이 제자는 곧 YMCA다. Y가 다리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선언에서 “Y는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믿어 신앙과 생활에서 그의 제자 되기를 원하는 청년들을 하나로 뭉치고 또 그 힘을 합하여 청년들 가운데 그의 나라의 확장을 힘쓴다”라고 했고, 또 “Y는 교회와 사회 사이에 있는 다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_44.‘나는 곧 다리다’에서


예수님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셨다. 겨자씨가 자라서 가지가 무성한 상태가 아니라 그전의 상태 즉 씨대로 있는 원상태를 천국이라 하셨다. 겨자씨 한 알은 지극히 작다. 보잘것없다. 씨 중에도 가장 빈약한 존재다. 허나 예수님은 이 겨자씨를 천국이라 하셨다.
우리 YMCA는 물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허나 자칫하면 프로그램만 생각하다 씨의 상태를 몰각하기 쉽다. 겉에 나타난 것만 보고 그 속의 내적인 것은 잊기 쉽다.
씨가 천국이지 가지가 천국이 아니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리라. 마찬가지로 믿는 하나하나의 개인들이 모여서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이나 시설이 천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리라. 그러므로 1966년엔 우리 모든 Y 직원과 회원이 원상태 로 돌아가서 가지가 무성한 나무보다 작은 씨 즉 겨자씨가 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_52.‘겨자씨 한 알이 곧 천국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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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한글 사랑


전택부 선생은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한글 사랑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그의 좌우명은“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장 33절)는 말씀이었다.‘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것’이 삶의 목적인 그에게 하나님 사랑은 곧 나라 사랑이었다.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그는 일찍이 YMCA 운동에 힘썼고, 겨레의 혼이 담긴 자랑스런 유산 한글이 제대로 쓰이고 그 위격(位格)에 걸맞은 위상을 확립케 하고자 애썼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에도 전념했다. 1926년 제1회‘가갸날’로 제정된 한글날은 1991년 ‘법정공휴일이 아닌 기념일’로 바뀌었고, 2006에는 ‘법정공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정해졌다가 2013년에야 온전한 국경일(법정공휴일)로 재지정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글날 국경일 지정 문제로 청와대에서 대통령 접견이 예정되었던 전택부 선생은 뜻하지 않게 일정이 무산되면서 그 충격으로 뇌출혈로 쓰러졌고, 이후 투병하는 가운데서도 한글날이 제 위치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쓰다 소천했다. 

전택부(全澤鳧, 1915∼2008)
호는 오리(吾里). 함경남도 문천 출생. 1940년 도쿄 일본신학교 예과를 졸업하고 1941년 같은 신학교 본과를 중퇴했다. 〈월간 새벗〉과 〈사상계〉의 주간을 지냈으며, 소천 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서울 YMCA 총무 및 명예총무, 한글전용국민실천회 회장, 한글인터넷추진 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이후 〈한국 기독교회사 만필〉, 〈토박이 신앙산맥〉, 〈양화진 외인 열전〉 등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사건 현장을 중심으로 한 교회사 연구에 정진했고, 한국 기독교의 수용과 성장을 토박이 신앙인의 신앙역사로 보려는 ‘토박이 사관’을 새롭게 시도했다. 한글 운동을 한 공로로 1978년 문교부 장관 표창, 1980년 외솔상을 수상했다.


By 청놀연View 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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