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No.9

메아리 자연캠프

지난 겨울캠프 이야기

2020년 겨울 청소년&예비중학캠프를 마치고

                                                                                                        - 청소년캠프 간사 강지수 -

보통 '일찍 일어나야지.'하고 생각을 해서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없다.

'다이어트 해야지.'라고 생각해서 살을 빼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나 자신이 이처럼 생각만 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수두룩하다.

'아 일어나야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누워서 괴로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아 그만 먹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배부름에 몸부림치며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자라면서 자책하지 않으려면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서는 생각을 앞서는 행동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내 경험이 쌓이고, 청소년을 만났을 때

청소년들이 '생각'을 딛고 '행동'을 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면 그들이 일상에서 자기 힘으로 행복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더 세차게 독려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캠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캠프는 행동하는 삶을 연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일상에서 학원과 디지털기기에 매여 패턴이 무너진 삶을 살고 있던 청소년들은 캠프에 와서 우선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에 드는 생활패턴을 연습한다.

일어나서 활동하지 않으면 재밌는 활동에 참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패턴을 스스로 지키지 않는 청소년은 없다.

이 외에도 캠프에서 하는 활동중에는 일상에서 혼자 실행하기엔 좀 어려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캠프에서는 '어렵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려고 할 때 그것을 떨쳐내고 당연하다는 듯 친구들과 의지를 모아 움직이고, 용기를 내어 행동하게 된다.

 

여러 가지 일화가 있는데 오늘 풀고 싶은 이야기는 모험협동놀이에 관한 일화이다.

'야곱의 사다리'라는 놀이가 있는데, 4m가량 되는 사다리 두 개를 마주보게 세우고, 서로 닿지 않게 한 뒤 나머지 모둠 구성원이 사다리를 잡고 있는 동안 한 사람씩 한 편 사다리로 올라가 다른 편 사다리로 내려오는 방식의 놀이이다.

야곱의 사다리를 하는 모습. 사진 속 청소년은 일화의 청소년과는 무관함

서로에 대한 상당한 믿음이 필요한 놀이인데, 믿음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성격이 쾌활하다고 생기거나, 친구랑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생기는 것만도 아니라서 모두에게 꽤나 도전이 되는 놀이였다.

그럼에도 모두 용기를 내어 한 명씩 차근차근 사다리를 넘어갔는데, 한 친구가 올라가는 사다리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꼭대기에 다다를 수록 손발을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그러다가는 나를 내려다 보며 "저 못하겠어요. 내려가면 안돼요?"라고 물어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 친구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인 듯 했는데, 그 눈빛을 마주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다.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결정과 책임은 모두 그 청소년 본인 몫으로 내어주고 싶었다. 사다리를 꽉 붙잡고 기다리던 다른 친구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할 수 있어!", "좀 만 더 올라가면 돼!"라는 등 몇 마디를 던졌지만, 정작 그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마주하고 있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주변의 말소리와 두려움에 휩싸인 그 눈빛에 머리가 시끄러워진 나는 "이제부터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마. 뭘 선택하든, 우리는 00가 한 선택을 존중할거고, 오로지 00가 한 선택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도와줄거야." 라고 말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얼마 뒤 그 친구가 "저 못하겠어요. 내려갈래요."라고 말하며 도로 땅으로 내려왔다. 모두들 무척 아쉬워하는 눈치였고, 나또한 아쉬웠지만 결정을 존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 다시 차례차례 한 명씩 사다리를 건너갔고, 놀이가 끝난 것 같지 않게 끝나버렸다.

슬쩍 보니 그 친구 표정이 편치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혹시 한 번 더 도전해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그 친구는 이내 "10분만 더 고민해봐도 되요?"라고 물었다. 우리 모둠 지도자와 친구들은 모두 흔쾌히 그러마고 답했다.

차가운 공기가 스민 고요한 정적 가운데 수 분이 지나고, 마침내 그 친구가 입을 뗐다. 다시 해보겠노라고.

약간 상기된 표정과 결의에 찬 눈빛으로 모두 일어나 이전보다 더욱 단단히 사다리를 붙잡았다.

그 친구는 제대로 해보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는지, 처음과 달리 발걸음이 무척 당당했다. 이전과 달리 떨지도 않고 척척 올라가더니, 반대편 사다리로 넘어가 다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그 친구가 사다리를 건너 다시 땅에 발을 디뎠을 때, 그 발만을 마음 졸이며 쳐다보고 있던 모두는 마을이 떠나가도록 환호성을 질렀다. 다함께 그 친구를 사정없이 토닥이며 꽉 안아주었고, 기쁨과 짜릿함의 눈물을 쏟았다.

모험협동놀이 중 그 친구가 두려워하며,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했다면 결코 그 성취를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들의 말 없는 기다림과 존중에 힘입어 그 친구가 '생각'을 넘어서 '결정'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해낼 수 있었다.

캠프에서는 이런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산에 가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친구가 친구들과 함께 무려 밤중산행을 해 낸 일, 할까말까 망설이며 내내 고민하던 친구가 지도자의 격려에 힘입어 발표회에 나간 일, 밥을 먹다가 멍 때릴 정도로 극심한 압박을 받던 친구가 마침내 곡을 완성해서 공연을 해낸 일, 처음 가보는 춘천에서 주어진 예산으로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을 해낸 일 등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예비중학캠프 가리산등반 한 모습. 왕복7시간 가량 산행이었다.

청소년들은 누가 보상을 줘서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억지로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내기 위해 친구들과 힘을 모아 움직인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볼 때면 언제나, 이들이 어리고 미숙한 존재로 치부할 그런 존재들이 아닌 것을 분명히 느낀다. 그리고 이들이 캠프에서 이런 경험을 쌓다 보면 일상에서도 자기 힘으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것, 자신이 정말 꿈꿔왔던 것을 실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올 겨울에도 청소년들과 행복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에 깊이 감사하며, 우리 청소년들이 얼른 지도자가 되어 서로 어깨를 맞대고 힘을 보태는 동료가 되기를 소망한다.

 


By 청놀연View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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