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No.17

자원봉사스토리

이경헌 단원의 봉사활동 종료 에세이 (1)

작성자 : 이경헌 단원 

<현실>

여기는 아프리카 아니 대한민국입니다. 

▶ 광활한 하늘위를 날고 있는 에티오피아 항공기의 모습

▶ 현대적으로 맵시있고 화려하게 건축된 아디스아바바 볼레(Bole) 공항의 모습

새벽 어스름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각자 마음속에 그려왔던 기대보다 훨씬 장엄한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배경으로 몇 장의 인증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새 밝은 하늘이 우리를 반긴다.

공항까지 우리를 마중 나온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한국에서 사진을 통해 그의 얼굴을 익혀두었기에 자신만만한 우리였지만 막상 도착하니 동양인의 시점 - 비슷해 보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를 찾기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전화번호가 적혀진 쪽지를 들고 누군가에게 핸드폰을 빌리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가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KVO 현지 지부장 Ato, Mikias였다.

짐을 싣고 그제야 한숨을 돌린 내가 How did you notice us? 라고 물어보니 That’s easy 라고 대답하는 그. 우리 쉬운 여자 아닌데…….(아재개그) 이미 대구에서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4시간, 인천공항에서 아디스아바바 공항으로 오는 데 16시간, 총 20시간 이상을 뜬눈으로 보낸 우리로서는 힘들만도 한 일정이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아디스아바바의 풍경에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감을 수가 없었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이른 아침부터 일터로, 학교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이리저리 엉켜있는 자동차, 수도 없이 건설 중인 빌딩들 사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앞으로 우리가 일하게 될 오로미아주 비쇼프투시에 위치한 KVO 사무국에 가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를 2개나 통과하여야했다. 고속도로, 그래 ‘돈을 내고 통과하는 그 잘 닦여진 도로’말이다. 이러한 에티오피아의 모습에 어떤 의미에서 컬쳐쇼크를 겪고 있던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와야 했는가’ 목적성마저 흐려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건 내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나는 도대체 아프리카의 어떤 모습을 기대하였는가?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비극과 빈곤을 부각해 대중적상업적 효과를 거두는 사진이나 영상물을 일컫는 말이다. 많은 국제개발협력 단체들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사람들의 인권이나 아동들의 섬세한 감정은 무시하고 가난과 빈곤을 자극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책 속에 끼워놓고 몰래몰래 읽다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결국 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던, 그 시절 내가 정말 감명 깊게 읽었던《토토의 눈물》의 저자 구로야나기 테츠코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서술한 바 있다. "같은 한 해 동안 아프리카에서는 440만 명의 아이들이 죽는데, 아시아에서는 830만 명, 인도에서만 350만 명이 죽습니다. 설사로 인한 탈수증이나 예방이 가능한 감염증 등으로요. 나머지는 라틴아메리카고요."

한 국제적 NGO는 수심이 깊은 강물에 베트남 아이들을 수차례 빠뜨렸다 건졌다. 현지인들의 만류에도 촬영을 강행한 이유는 '아동 노동 현장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어린 소녀에게 썩은 물을 마시게 한 방송사도 있다. 에티오피아 식수난을 촬영하러 갔는데 생각보다 물이 깨끗해서 억지 연출을 한 것이다. "이렇게 비참한 영상을 만들지 않았더니 모금액이 3분의 1 가까이 줄었다" 구호단체들은 "자극적이지 않으면 모금이 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또 연출이 없으면, 짧은 촬영 기간에 제한된 비용으로 아프리카의 실상을 다 담긴 어렵다고도 말한다. 아프리카 인사이트의 허성용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처럼 계속 자극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면 사람들은 무감각해지게 될 겁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모금 시장 규모를 서서히 줄어들게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파견 교육을 받는 동안 ‘빈곤포르노’의 위험성과 왜곡된 선입견 양산에 대하여 수차례 주의를 받았건만 정말 이곳은 상상 이상의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TV를 통해 늘 보아온 아프리카의 모습(빈곤과 질병, 재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 것인가?


▶ 비쇼트푸시 9동 거리의 모습. 말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등 다채로운 모습이다.

수도에서 차로 고작 1시간 30분 거리인 사무국이 위치한 비쇼프투시 9동에서는 말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고, 고속도로를 통과할 때에는 창밖으로 줄을 지어 걸어가는 낙타를 구경하기도 했다. 우리가 머무는 마을에는 아침이든 저녁이든 도로가에 엎드려 위태로운 모습으로 구걸을 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대단한 고속도로를 지나왔건만 마을의 비포장도로는 마을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태우고 던져버린 죽은 동물들의 잔해와 동물들의 변이 곳곳에 널려있다. 이런 흙길에서 날리는 먼지는 하루 종일 기관지를 괴롭혀 기침이 끊이질 않는다. 당신이 기대하는 모습이 이런 것이라면 현재에도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 아프리카에는. 나 같은 외국인이 지나갈 때면 한 푼이라도 얻기 위해 먼 길을 따라오는 이들이 있어 이유 모를 위협을 느끼기도 하고 핸드폰이나 지갑을 소매치기하는 아이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역시 아프리카는 화려한 색이지’하며 이곳 청년들의 패션 센스에 감탄하는 동안 누군가는 어느 머나먼 국가에서 원조 받은 그들이 읽지도 못할 언어가 위아래로 새겨진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빈다.

이것이 아프리카다. 아니, 이것은 아프리카의 모습인 동시에 우리의 모습이다. 대기업이 화려한 불빛을 내뿜으며 고도의 경제 발전을 이루는 동안 공장의 소녀 노동자들은 어두운 불빛 아래 하루 14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견뎌야했다. 이제 막 자전거의 페달에 발을 올린 에티오피아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기도 하고 또 현재의 극단적 부분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와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 예의를 차리며 서너 번 으레 거절하는 문화가 있고 자국의 언어를 자랑스러워하며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도 원조를 통해 경제발전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원조뿐만 아니라 다양한 내부적 요인도 존재하지만 원조가 발전의 첫 단추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실제적 경험은 단순히 자본을 많이 투입시키는 국가보다 우리나라가 아프리카를 더욱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나라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류의 절반은 아파 신음한다. 우리는 대개 몸의 일부분이 아프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혹시 나에게 또 다른 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어떤 병의 증상으로서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근심한다. 지금 지구 건너편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아파서 신음한다는 것은 결국 너희도(그러니까 우리도) 아플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는 아닐까? 우리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인권의 가치를 믿고 진심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면 또 그 인간의 범주 안에 결국 ‘나’ 역시도 포함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유념한다면 세계 곳곳의 현재진행형 문제에 대해 결코 모른 척 할 수 없지 않을까? 인류 공동의 유대는 ‘나’의 안녕과 행복의 출발지면서 종착지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하는 인권의 기본적인 조건들이 이곳보다 뛰어난 곳에서 어쩌다 내가 태어났고, 이러한 일들이 나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늘 자각한다면 이들에 대한 인류애적인 미안함, 책임감은 평생의 짐처럼 늘 지고 가야하는 것이며 내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일들이 대단한 시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책무성’이야말로 우리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의 기본 토대가 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고난>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나라 에티오피아, 개미와의 동거

 

KVO 비쇼프투 지부에 단원들이 머무는 숙소는 방이 하나였는데 현재 파견된 단원이 두 명이고, 두 단원의 생활패턴이 불행히도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으로 다르기 때문에 지부의 큰 배려로 또 다른 방을 하나 만들어주셨다. 목공수 아저씨가 오셔서 뚝딱뚝딱 하시더니 이틀 만에 완성된 나의 방! 누가 아프리카 사람들이 일을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한다고 했는지... 수녀님의 진두지휘 하에 방이 뚝딱 만들어졌다.

설레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새로운 방에서 첫날을 맞이하게 된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싶어서 매트리스에 누워 책을 집어 들고 몇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발밑으로 언뜻 보이는 검은 그림자에 벽에 저렇게 더러운 때가 있었나 하며 다가섰는데 그 검게 드리운 그림자는 때가 아니라 엄청난 개미‘떼’였다! 태어나서 내가 이렇게 많은 개미를 본 적이 있었던가. 어디서 나온 개미떼인지 비쇼프투에 있는 개미란 개미들은 다 모아놓은 것 같았다. 개미가 너무 많아서 처음에는 이 개미들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콘센트 두 구멍으로 개미떼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 숙소에 이사온 첫날 방에 들이닥쳤던 엄청난 개미떼의 모습


“세상에나 만상에나, 이건 꿈일 거야”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아니 이사 온 첫날부터 이게 무슨 불청객의 습격인지, 이 침입자들은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수백만 마리가 바쁜 행렬을 이어갔다. 침입자, 그런데 침입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달리 생각해보면 개미가 나의 방을 침입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개미의 집터를 침입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 온 지 겨우 한 달도 채 되지 않았고 개미는 못해도 3대는 가문을 이어 이곳에 터를 잡고 생활을 했다고 상상하니 내가 바로 죄인이었다. 누구를 탓하리요.

약을 뿌리고 개미가 취하는지 내가 취하는지도 모르고 전쟁터 같은 와중에도 잠깐 졸고 새벽 2시쯤 일어났을 때에는 까만 개미 무덤이 보였다. 그것은 정말 개미 무덤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By 한국국제봉사기구View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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