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No.19

자원봉사스토리

민유니 단원의 봉사활동스토리

작성자:  단원 민유니



# 12군 적응기

 호치민에서도 센터가 위치한 12군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호치민과는 다른 분위기다. 1군부터 12군까지 군으로 구분되어 있는 호치민은 각 군마다의 특색이 있는데 12군은 관광지도 아니고 시내도 아닌 그냥 로컬 지역인데, 서울로 따지면 구로구 같은 이미지려나? 어쨋든 12군은 호치민 시내에서도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외곽에 있고, 나같은 외국인도 흔하지 않은 그런 동네다. 1년간 내 삶의 터전이 된 이곳은 사실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거리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소음들이 가득했다. 오토바이 경적에 예민해졌다. 동남아하면 떠오르는 초록의 녹지 같은건 없고, 매연과 뜨거운 햇빛에 매일 마스크를 써야 했고, 산책할 작은 길 하나 없다니 슬프고 우울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높은 빌딩과 다양한 세계음식들, 그리고 여행지의 활기와 화려함에 현혹되어 호치민 시내(1군)로 여행하듯 떠나 밤 늦게 돌아오기도 했다.

 혼자서 카페를 배회하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하루는 중급반 학생들이 초대해 함께 유원지에 놀러갔다. 계곡을 물놀이 공원처럼 꾸며놓은 곳이었는데 외국인은 나 혼자뿐이었다. 신기한 풍경이었다. 우리나라 계곡처럼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맥주와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우리 학생들도 화로에 불을 피우고 가져온 구이 재료들인 고기, 새우, 야채들로 바베큐를 하기 시작했다. 못, 하이, 바(1,2,3!)를 외치며 맥주를 마시고 일어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나는 완전히 현지인이 된 기분이었다. 주변 사람 모두들 베트남어로 말하고 베트남어로 노래하고 베트남 방식으로 먹고 마시며 놀고 있었다. 어느 누가 호치민에 와서 현지인들 틈에서 헤엄을 치고, 옷이 젖은 채로 화로에 불을 피워 바베큐를 해 먹겠는가.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학생들과 물 속에서 놀고 있는 내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보면서 웃었고 그제야 내가 이곳에 살러 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던것 같다. 

▶ 어느 누가 호치민에 와서 현지인들 틈에서 헤엄을 치고, 옷이 젖은 채로 화로에 불을 피워 바베큐를 해 먹겠는가.

▶ 못, 하이, 바(1,2,3!)를 외치며 맥주를 마시고 일어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나는 완전히 현지인이 된 기분이었다.


# 게시판 제작기

 한베센터는 호치민의 다른 어학원 시설과 비교했을 때도 훌륭한 교육 시설을 갖추고 있다. 쾌적하고 시원한 강의실, 분필가루날림 걱정 없는 보드칠판, 프로젝터와 TV 등의 멀티미디어 장비들도 구비되어 있고, 학생들이 정보를 찾아보고 스스로 온라인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약 50여 대의 컴퓨터도 마련되어 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지만 무언가 조금 아쉬웠는데, 그건 바로 한베센터의 강의실들이 조금 딱딱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활동한 결과물들은 내 기대보다 놀랍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을만큼 훌륭한 작품들이 많아서 강의실 한쪽 벽면에 붙이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이 쓴 글을 보면서 서로 자극이 될 수 있고 적당한 경쟁심은 학습에도 좋은 효과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 숙제를 계속 벽면에 덕지덕지 붙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초등학교든 대학교든 어느 교실에 가도 당연하게 붙어있는 게시판이 한베센터에도 필요할 것 같았다.

 한국어 강사를 준비하기 전에 출판사에서 편집 디자인을 했던 경험을 살려 게시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게시판을 어디에 붙일지, 그리고 어떤 내용으로 구성할지, 디자인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교안을 짜고, 머리를 쓰다가 오랜만에 귀여운 그림을 찾고 글씨에 색을 입히니 굳었던 머리가 환기되는것 같았다. 혼자서 꼼지락 거리며 만든 게시판은 내가 조금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학기가 끝나는 12월쯤에 완성되었다.

 한베센터의 각종 행사와 말하기 전용 강의실로 사용되는 6-1 강의실의 한쪽 벽면에는 한베센터와 한베센터의 선생님들과 직원, 학생들을 소개하는 공간, 그리고 간단한 소식, 한베센터에서 지켜야할 약속을 공지하는 게시판이 설치되었다. 반대편 벽면에는 'WE LOVE KOREAN'이라는 게시판이 걸렸다. 이 곳에는 체육대회와 한국문화특강, 그리고 수업시간 학생들의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모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학생들의 멋진 한국어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참 잘했어요!' 그리고 '하루 한마디 한국어'로 마음에 새길 좋은 한국어 표현들을 걸기로 했다. 이 게시판에는 학생들의 소중한 꿈을 담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는데, 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갖게 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소중하게 적어 꿈나무에 붙이는 온전히 학생들을 위한 코너로 꾸몄다.


 숙원사업(?) 같았던 게시판 만들기를 모두 끝내고 보니, 한층 밝고 재미있게 변신한 강의실의 모습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고 뿌듯했다. 아직은 허전한 구석, 비어있는 여백들이 있지만 새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의 꿈과 재미있는 추억들로 더 빽빽하게 채워질것이 기대된다.

▶ 한층 밝고 재미있게 변신한 강의실의 모습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고 뿌듯했다

▶ 새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의 꿈과 재미있는 추억들로 더 빽빽하게 채워질것이 기대된다


# 에코백 제작기

 매년 1월쯤에는 12군 학교에서는 큰 행사가 열린다. 12군 학교 축제에서 한베센터는 한국문화행사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한다. 학생들이 노래를 경연하는 프로그램과 한국문화 퀴즈 등으로 구성되는데, 노래자랑은 복면가왕으로 진행하기로 했고, 퀴즈도 OX 퀴즈와 골든벨 퀴즈로 우승자를 뽑기로 했다. 그리고 참가학생들에게 나누어줄 작은 기념품이 필요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실용적이고 예쁜 에코백을 만들기로 했다. 출판사에서 일했던 이력이 이미 들켰기 때문에 에코백 디자인은 내몫이 되었다.

부담되는 일이었지만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모으고 시안을 수정하면서 KVO의 슬로건인 ‘나부터, 여기부터, 지금부터’와 새싹 이미지를 엮은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가방의 컬러를 흰색으로 할지, 검정색으로 할지, 남색으로 할지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남녀노소 편안히 들고 다닐 수 있는 검정색으로 결정되었다. 디자인 불모지인 베트남의 12군에서 그래도 나름 귀여운 디자인이 탄생했다. 문화행사는 성공적으로 잘 마쳤고, 에코백을 받아든 학생들의 표정도 밝아 마음이 놓였다.

▶ KVO의 슬로건인 ‘나부터, 여기부터, 지금부터’와 새싹 이미지를 엮은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 나는 한국어 선생님입니다

 위의 이야기들을 보면 내가 게시판을 만들고 에코백을 만드는 디자인 업무를 하러 베트남에 온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한국어 강사로 이곳에 왔고, 1년간 정말 열심히 즐겁게 이 일을 했다. 대학 전공으로 국어를 하긴 했지만, 한국어 교원 준비는 2년전 쯤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한베센터가 내 한국어 강사 경력의 첫 시작이었다. 중급반 전담 강사로 오후반과 야간반 학생들 50여명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는데 말하기, 듣기, 쓰기 수업은 막연했던 교사로서의 역할들이 실제가 되던 순간들이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고 수업에 실패하는 날들도 있었지만 모두 뼈와 살이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는데, 이건 모두 나의 소중한 첫 교실이 바로 한베센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나의 첫 교실에는 계산없이 착하고 순수하고, 아르바이트와 회사 일을 하면서도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첫 교실은 경력 없는 새싹 한국어 강사가 다양하게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주었다.

한국에서의 한국어 교원의 차가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볼 때면 마음이 착잡하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라며 겁먹는 마음은 없어졌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내가 강사로써 성장하는 모습이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아직 한참 부족하고 더 많은 경험과 내공을 쌓아야 하겠지만 내가 일하게 될 곳이 어디든, 내가 만나게 될 학생들이 누구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가지고 갈 수 있게 갖게 되었다.

▶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는데, 이건 모두 나의 소중한 첫 교실이 바로 한베센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 나의 첫 교실에는 계산없이 착하고 순수하고,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 ‘꼬민’ 하지 마세요!

 학생들은 나를 ‘꼬민’ 이라고 부른다. 베트남에서는 여자에게 예의를 갖춰 이름을 부를 때, 이름이나 성 앞에 ‘꼬(co)’를 붙인다. 정중한 단어이지만 ‘꼬’라는 발음이 주는 귀여운 느낌, 그리고 어떤 이름과도 잘 어울리는 소리 같아서 나는 학생들이 ‘꼬유니’, ‘꼬민’이라고 불러주는 걸 좋아했다.

어느 날, ‘고민과 상담’이라는 주제로 말하기 수업을 하면서 ‘고민’이라는 단어를 배웠었다. 학생들은 ‘고민’의 발음이 나를 부르는 말인 ‘꼬민’과 비슷하다며 웃었다. 그리고 “꼬민! 고민하지 마세요!” 라던가, ‘고민이 있을 때, 꼬민과 상담할래요.’ 라며 재미있는 농담들을 했다.

‘꼬민’이라는 귀여운 발음이 ‘고민’이라는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와 비슷하다는게 조금 웃펐지만(웃기지만 슬픈) 역시나 나는 고민이 많은 사람이 맞다. 수업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일은 아주 즐겁고 행복했다. 수업시간에는 에너지를 많이 내뿜는 편이지만, 한껏 발산한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욕구 때문인지 평소에는 집순이에 혼자 놀기를 좋아했다. 베트남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사실 타지에서의 삶이 힘들기도, 고민이 많기도 해서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 걸 택한것도 같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 큰 에너지가 없어서 학생들의 교실 밖 데이트 신청도 거절을 한 적이 많았다. 교실에서의 꼬민과, 교실 밖의 꼬민이 조금 달라보였을 수도. 그래서 학생들이 보기에 나는 고민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을 거다. 그래서 나에게 더 많이 놀러가자고, 밥 먹자고 다가와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학생들에게 참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한국에 돌아갈 시간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삼십대의 3년차를 시작하면서 이제 한국에서의 밥벌이를 고민해야하고, 다시 마주해야하는 생활 문제들이 물론 큰 고민이지만 학생들이 장난치듯 ‘꼬민! 꼬민하지마세요!”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덕분에 무거운 고민들도 조금은 가볍게 넘기고 쉽게 시작해보자는 마음을 먹으며 힘을 낸다. 그리고 나와 만났던 학생들이 가끔씩 ‘꼬민’을 떠올릴 때면, 너무 깊이 ‘고민’하지 않고 좀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

▶ 학생들은 ‘고민’의 발음이 나를 부르는 말인 ‘꼬민’과 비슷하다며 웃었다.  “꼬민! 고민하지 마세요!”

▶ 나와 만났던 학생들이 가끔씩 ‘꼬민’을 떠올릴 때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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