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No.21

자원봉사스토리

[베트남] 김연정 단원의 봉사활동 스토리

약국나이 45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

 

- 김연정 단원-

 

처음 해외봉사 활동을 간다고 했을 때, 지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우선 이제 대학생이 되는 딸은 “엄마 멋있어!”라고 말해주었고, 사춘기에 접어든 둘째는 말이 없었다. 막내아들은 “내가 안 된다고 해도 갈 거잖아! 그렇다면 잘 갔다 와!”라고 응원 아닌 응원을 해주었다.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의 열정이 아직 남아 있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어쩌냐고 걱정하는 지인도 있었다. 누구는 그 나이에 가냐고 했다. 나의 약국 나이 45세.

그래. 적지 않은 나이지만, 해를 넘길수록 나이는 줄어들지 않으니까..

이 나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누구에게 밀리지 않을 열정과 패기가 있다고 자부하던 나는, 뜨거운 청춘들이 모여 있는 KCOC 교육에서 살짝 위축되기도 했다. 그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라고 늘 말해왔던 내가 아닌가? 주체할 수 없어 흘러넘치는 이 에너지를 주워 담아보자고 생각했다. KCOC의 2주간의 합숙교육은 막연했던 해외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국제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시선, 인권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 주는 좋은 교육이었다. 합숙교육에서 만난 친구와 언니들과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교육이 끝나고 열정의 기차에 몸을 싣고 베트남에 도착했다.

   

        ▶ 열정의 열기를 뿜어내던 KCOC 합숙 교육.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설레임, 두려움, 긴장감 등 복잡 미묘한 감정의 집합체를 느끼게 했다. 애써 태연한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일 년 동안 지내게 될 숙소에 들어섰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도마뱀의 꼬리를 보았다. 너무 빨라 몸통을 보지는 못했지만, 꼬리!! 그것은 분명 도마뱀이었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이기 때문에, 도마뱀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도마뱀 녀석을 집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도마뱀이 무서운 건지, 이제부터 생활하면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하는 것이 서러운 것 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하루 만에 터져 나왔다. 의기양양, 열정 가득했던 나는, 하루 만에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Da lat [LANG BIANG] 정상에서..


(호)치민 (도)마뱀이라는 뜻으로 ‘호도’라는 살짝 깜찍한 이름도 지어주고, 퇴근 후 집에 들어갈 때 이름을 불러주기도 했다. 도마뱀은 해충을 잡아먹는 좋은 동물이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우리 집에 벌레가 나타나는데도, 호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가?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하기야 도마뱀의 크기보다 큰 벌레여서, 그 입으로는 잡아먹을 수도 없겠다고 나름 이해를 해 본다. 벌레와 도마뱀이 무서워 화장실 가는 것을 참다보니 방광염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다. 사람마다 싫어하거나 무서운 것이 다 같을 수 없지만, 다행히 같이 파견 온 선생님은 본인 스스로도 무서우면서도, 나를 먼저 걱정해주고, 내 마음을 헤아려 주고, 공감해주고 위로해 주었다. 도마뱀과 벌레와의 전쟁에서 나를 살아남게 해 준 사람은 같이 파견 온 선생님이었다. 이제 도마뱀이 벽을 오르내리고 있으면, 같이 살면서 월세는 나만 내고 있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

도마뱀과 벌레와의 전쟁에서 나를 지켜준 사람이 같이 파견 온 선생님이라면, 내 뱃살의 지분80% 책임 질 사람도 선생님이다. 매일 퇴근할 때 현진 쌤은 애교가 섞인 목소리로 “쌤~”하고 부른다. 그것은 헤어지기 아쉬워 맥주를 한 잔 하자는 얘기이다.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이유를 만들어가며 우리는 일주일에 7일을 같이 맥주도 마시고, 서로가 만든 음식을 나눠 먹었다. 뱃살을 지분이 높은 주인에게 돌려 줄 수 있으면 좋겠다. ^^ 우리는 스무 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쿵짝이 잘 맞다. “뷰티(아이 돌 그룹 ‘비스트’ 공식 팬클럽 이름)라는 것으로 우리는 출발이 좋았다. 우리는 둘 다 고기를 좋아한다. 나는 살코기를 좋아하고, 현진 쌤은 비계를 좋아한다. 나는 닭다리를 좋아하고 현진 쌤은 날개를 좋아한다. 나는 계란 흰자를 좋아하고, 현진 쌤은 노른자를 좋아한다. 찬반 논쟁이 뜨거울 수 있는 탕수육은 찍먹으로 일심단결 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같아야 할 것과 달라야 할 것을 확실히 구분하며 천생연분. 찰떡궁합은 이런 것!을 보여주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내가 배워야 할 만큼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과 모든 업무에 열정을 다 하는 모습,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등, 참으로 배울 점이 많은 선생님이었다. 불교에서는 옷깃을 스치는 데도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일 년의 시간을 아름답게 채울 수 있으니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우리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마주 하면서, 서로가 아니었다면 무사히 일 년의 활동을 마무리 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소중한 인연이라 더욱 감사하다.

▶ 2020년 1월1일 베트남에서의 해돋이(좌), 학생들과 함께 했던 즐거웠던 Vung tau 여행(우)

도마뱀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든든한 배우자 같은 현진 쌤이 있었다면, 베트남의 봉사활동을 더욱 행복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준 것은 베트남 현지 학생들이었다. 베트남 사람들 모두가 순수하고 착하다고 착각할 수 있을 만큼 정말 좋은 학생들만 있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한베청년경제기술교육센터’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회사에 취업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센터이다. 나는 한국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창의적 체험활동, 진로직업,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재취업 교육 등 15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는 강의를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한국어 교사로는 첫 걸음이었고, 베트남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학생들과 처음 만나는 순간 나의 걱정은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나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연 학생들은 나를 맞이할 준비가 끝나 있었다. ‘호랑이 선생님, 토끼 선생님, 공주 선생님’ 다양한 별명이 가지고 학생들과 소통했다. 학생들도 나의 마음을 읽고 잘 따라와 주었다. 숙제 안 했다고 혼내다가 갑작스런 생일축하에 멋쩍기도 하고 무섭다며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 마음에 행복하기도 했다. 강의실에서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지만, 밖을 나서면 학생들은 나의 보호자가 된다. “선생님 가방 조심하세요!, 선생님 핸드폰 조심하세요!, 선생님 오토바이 조심하세요!”라며 하나하나 신경 써 주었다. 길을 건널 때면,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어릴 적에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엄마가 초등학교 내내 우유급식을 신청했었다. 그래서인지 우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성인되어서도 우유는 카페라떼, 카푸치노 등 커피로만 우유를 섭취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향에 다녀오는 학생이 오는 길에 우유가 유명한 곳을 들러 아침 일찍 우유를 사 가지고 우리 집에 왔다. ‘왔으니 점심을 먹자’라는 나의 말에 땀 냄새가 나서 안 된다며 그냥 갔다. 너무 신선해서 유통기한도 짧은 우유! 이걸 선물하려고 먼 길 오토바이를 탔으니 땀 냄새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괜찮다고 들어오라고 해도 우유만 주고 간다. 나는 그렇게 커피가 아닌 우유를, 마음이 느껴지는 최고의 우유를 마셨다.

▶ 한국어 중급과정을 끝내고 졸업하는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의 학생들

베트남 현지 학생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일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집에 큰 벌레가 나타나면 “선생님! 괜찮아요. 우리가 있잖아요~”하고 시간에 상관없이 달려와 잡아주기도 하고, 첫 월급을 받아서 얼른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도 한다. 추석에는 한국에 가지 못하는 선생님이 외로울까봐 치킨에 맥주를 사들고 우리 집을 오는가하면, 크리스마스에는 본인이 만든 케이크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집으로 초대해 가족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사랑해요’라는 말을 자주하고,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 만족하며 살아가는 법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한국어라는 언어를 나누었을 뿐인데, 이들은 나에게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러 왔는데, 내가 배워가는 것이 더 많아졌다. 학생들을 자신들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나의 사랑이 짝사랑이 되지 않게 오래도록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

     ▶ 사랑이라는 단어로 연결 된 우리 [ 한국 ♥ 베트남 ]

       ▶ 숙제 안했다고 혼내다가, 갑작스런 생일축하에 살짝 당황 ^^

나의 베트남 생활은, 늘 많은 것을 나누고, 모든 것을 함께 해 준 현진 쌤과 학생들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파견기간동안 나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 준 것은 한국에 있는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아들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서 지각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매일 아침 깨워주는 걸로 해결 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막내와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선 초등학교 6학년 둘째 딸은 엄마가 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생활하기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나의 말에, 둘째 딸은 엄마의 꿈이니까 지금 포기하면 안 된다고 용기를 주었다. 나를 돌아보면 내가 초등학교 4학년, 6학년일 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나는 그냥 놀기 바쁜 초등학생이었다,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이 오히려 나를 응원해 주었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이라는 책을 읽고 나는 해외봉사라는 꿈을 꾸었다. 그 책을 읽은 지 20년 정도가 지났고, 나는 ‘월드프렌즈 NGO'라는 이름으로 베트남 호치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했다. 이력서에 적을 한 줄 스펙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인가 대단한 결심을 한 것도 아니었다. 누구는 그 나이에? 라고 묻기도 했지만, 나는 이 나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이 나를 여기에 오게 했다. 많은 사람이 해 보지 못한 일, 도전하지 않은 일에 많은 미련을 가지듯이 나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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